summer trip
personal work
2018
2018
1.
소나무.
엄마는 책 읽고 있는 나를 툭 치고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나는 며칠 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단편 소설을 한 번 더 읽고 있었다. 책에 머리 박고 있느라 창문에 지나가는 풍경 하나 제대로 못 봤다는 생각에 반성하며 엄마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길고 높게 뻗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소나무가 원래 저렇게 얄쌍하게 길었나?
원래 소나무가 저렇게 길지. 그래서 집 지을 때 많이 쓰잖아.
내가 아는 소나무는 저런 것보다 삐죽빼죽 두꺼운 거였는데.
그런 건 절벽에서 많이 자라고. 아무튼 여기도 소나무 숲이 있네, 여기 와서 처음본다야.
엄마는 이곳에 있는 동안 무언갈 발견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발견은 당신이 이미 아는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익숙한 한국의 것들을 이곳에서 발견할 때마다 나를 붙잡고 얘기를 했다. 그러고는 항상 이렇게 끝났다. 한국이 제일 낫네.
우리나라가 다른 데 비할 곳 없이 가장 좋은 나라라는 걸 스스로 이해하고 싶기 때문일까. 이곳의 글도 말도 모르는 엄마가 이 낯선 나라에 정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인 걸까. 그저 단순한 반가움 때문일까. 아니면 옆에 앉아 말 한마디 없이 개인 플레이하는 하나 둔 딸내미랑 시답잖은 대화라도 하고 싶기 때문일까. 뭐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겠지 혼자 헤아리며 엄마가 발견한 것들을 들뜬 얼굴로 내게 보고하듯 말할 때마다 나는 그냥 작은 리액션 한두 개 해주고 말았다.
엄마랑 싸우(는 게 아니라 혼나는 것이라고 그녀는 늘 말하지만)고 난 후 나는 종종 일종의 복수 차원으로 나 그만 시키고 엄마 혼자 장에 가서 사 오라고 말하곤 했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아는 말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것만 있는 나라에서 한 달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엄마 나이대의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그런데 엄마는 보란 듯이 혼자 장에 가서 호박이니 바게트니 하는 것들을 사 왔다. 불어로 시부렁대는 할아버지 앞에서 왜 이리 비싸요, 싸게 싸게 같은 말들을 하면서 이 사람들도 한국어 좀 배워야 한다며, 한국어만 해서 장을 봐왔다며 뿌듯해하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움츠리고 무서워했던 것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별것 아닌 것인지 깨달았다. 여기 살면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에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시간 숨어있었는지, 그것이 스무 살 적 나의 모습과 얼마나 다르고 그 달라지는 모습이 왜 나는 나이가 드는 것으로 생각했었는지, 생각했다.
2.
파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 안, ㅁ 자로 배치된 좌석에 내 옆엔 엄마가, 마주 보는 좌석에는 영어를 쓰는 아기가, 그 옆에는 독일인인 듯한 백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아저씨는 가방에서 견과류 봉지를 꺼내더니 옆자리 아기에게 나눠주었다. 우리 좌석 옆에는 그 아기의 엄마 아빠인 듯한 사람 둘과 좀 더 큰 아이와 그중에 가장 어린 아기가 함께 앉아있었다. 엄마는 걔가 너무 예쁘게 생겼다며 (늘 그렇듯 한국말로) 얘, 너 왜 이렇게 예쁘니, 하고는 옆 엄마에게 한 번 안아봐도 돼요? 했다. 꼬불꼬불한 검은 머리를 가진 걔는 우리 좌석으로 뒤뚱뒤뚱 걸어와서 내가 들고 있던 플라스틱 통을 만지작댔다. 그러더니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자기 몸을 내게 부비더니 안아달라고 손을 뻗었다. 아기는 내 품에 안겨서 한참 있다가 엄마 품에 옮겨갔다가 플라스틱 통을 만져댔다가 또 내 무릎에 누웠다. 아기(이름은 아만다였다)는 아직 말을 못 해 입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게 더 쉬운 것 같았다. 어쩐지 아만다는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했는데 나는 그것이 되게 어색했다. 내가 노력한 것도 없는데 별안간 날 향해 안기러 온다는 건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만다가 그렇고 건후가 그렇고 강아지가 그렇고 고양이가 그렇고……. 산이나 비나 별이나 새벽이나…… 그런 것들이었다. 국경이고 언어고 다 허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들. 무해한 것들. 선하고 악한 것을 나눌 수 없는 것들. 날 아프지 않게 하는 것들. 나는 왜 그런 것들이 그리 좋은지 생각했다.
3.
엄마는 내가 손톱을 물어뜯는 걸 볼 때마다 자기 탓을 했다. 내가 사랑을 많이 안 줘서 그런 건지, 대체 뭐 땜에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녀의 말마따나 버릇들엔 보통 이유나 계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 버릇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시작된 건지 잘 모르겠다. 어긋날 때. 괘씸할 때. 부정할 때. 초조할 때. 찜찜할 때. 무질서할 때. 무서울 때. 비정상일 때. 부족할 때······. 그럴 때마다 손톱을 물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작정을 하고 손톱을 뜯은 적은 없지만 지나고 보면 손톱을 뜯고 있었네. 보기에도 참 미운 버릇이고 남이 찍어준 사진 속에 손톱을 물고 있는 나를 보면 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여전히 피가 나고 삐죽빼죽한 손톱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사실 이젠 불안을 잠재우는 테라피 같은 것이 되었다. 호흡법이나 명상으로 마음을 써 진정하는 방법과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효과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손톱에 집중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불안한 것이 없다는 말이고, 그러므로 내 자가 치료는 끝이 나지 않고 손톱은 성할 날이 없다. 이것도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인데 치아의 알맞은 위치에 가져다 넣어야 원하는 만큼 잘 갈아낼 수 있다. 근데 웃긴 건 만지면 만질수록 뜯어내면 뜯어낼수록 예쁘지가 않다는 거다. 어느 쪽은 깔끔하게 뜯겼는데 어느 쪽은 울퉁불퉁하고, 그래서 그 울퉁불퉁한 쪽을 다시 잘 갈면 또 다른 쪽이 삐죽 튀어 나와버려 어느새 내 머릿속엔 손톱 모양을 잘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 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손톱을 뜯다 보면 포도 두 개의 양을 똑같이 나눠주겠다며 한 알 한 알 먹다가 결국 다 먹어버리던 못된 여우처럼 손톱을 다 먹어 치우고 만다. 가만히 두면 모양대로 잘 자라는 애를 완전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나를 못 가만둘 때마다 괴롭혀서 내가 보는 부족한 것들처럼 똑같이 만들어버린다.
엄마의 자기 탓을 들으면서 손톱 물어뜯는 버릇만큼 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만큼 나라는 사람이 왜 그리 어딜 가나 기어코 결핍을 찾아내고 그것에 얼마나 도취하는 존재인지, 그렇지만 얼마나 완전하지 않은 것을 못 견디는 존재인지,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몸뚱아리를 상처 내면서 안정을 찾는 얼마나 모순된 짓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나는 갑자기 B를 떠올렸다. 우린 버릇처럼 자신을 학대하는구나. 그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구나. 무엇이 그렇게 부족한 건지. 무엇이 그렇게 밉고, 원망스러워서 스스로에게라도 죄를 물어야 하는 건지. 이 불안과 강박의 태초, 그리고 결말을 알고 싶어서 나는 질기게도 살고 있는 것일까.
4.
혼자가 아닌 여행은 보통 말들로 이루어진다는 걸 셋이 있으면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들은 생각이 아니라 대화라는 것을.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나는 수많은 말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평소라면 녹음을 하거나 했을 테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더 많이 찍었다. 담고 싶은 것들이 찰나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같이 있는 동안에는 오래 할 말을 생각하고 써야 하는 글보다는 사진이 더 알맞아 보였다. 사진을 찍는데 왠지 편지를 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만을 향해 렌즈를 두는 것. 누군가만을 위해 셔터를 누르는 것. 이곳에 있는 당신들을 최선을 다해 담는 것. 사진을 찍는 것이 누군가만을 위해 존재하는 동작처럼 느껴져서, 사진을 찍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당신들을 생각하는 사람. 아무튼, 내가 나이기 위해 하려는 행동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기뻤다. 가끔은 무려 내가 나라는 것을 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나이고만 싶어서, 당신들을 위해 사진기를 드는 ‘나’이고만 싶어서 문득문득 주저앉고 싶어졌다. 이 지겨운 사실이 나는 괴로웠다. 이 감정은 스물한 살 적 날 지우고 싶어 사진기를 들었던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스위스에 높은 어느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았던 이 산자락 어딘가에 집을 짓고 사는 저 이름 모를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욕구와 비슷한 것 같기도,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이 욕구는 과연 파괴적인가, 아님 나르시시즘적인가. 공책에 이렇게 적고는 그냥 말았다. 어떻게 더불어 살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어. 이렇게 적고는 공책을 덮었다.
5.
엄마가 늦게 일어나는 우릴 대신해 밥을 하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했다. 여행루트나 교통편, 숙소를 찾아보는 일은 보통 내가 하고, 재준이는 무거워서 들기 어려운 짐들을 들어주고 운전하는 엄마 옆에서 길을 같이 봐주었다. 이런 식으로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분업이 되어서 베를린에서부터 스위스, 프랑스 남부까지 서로 맡은 일처럼 책임감 있게 해냈다. 서로의 자리를 먼저 생각하고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하기에 우린 충분히 큰 듯했다. 생각해보니 재준이와 이렇게 여행 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첫 여행을 서로를 배려할 수 있을 만큼 큰 후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6.
매일 아침 요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몸을 접으면서 누구와 계속 함께 산다는 건 서로를 조금씩 견디는 일이라던, 김애란이 썼던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어쩐지 계속계속 답답했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했다. 나는 조금 더 나이고 싶고, 조금 더 외로워지고 싶었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이 내게는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게 내게는 더불어 사는 것보다 더 쉽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